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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레기 불법투기와 도덕적 해이
    프레임으로 본 세상 2016. 11.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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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 불법 투기와 도덕적 해이

    퇴근하는 길에 학교 옆 담벼락에 있는 뜬금없는 화분과 전신주를 보고 DSLR을 꺼내 들고싶었다. 출근할 때는 DSLR을 가지고 가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휴대폰으로 찍었다. 해질녘이라 어둑어둑 한 거리를 찍으려고 하니 ISO를 몇천대로 올린듯한 사진이 나왔다. 이곳에 화분이 왜 있는 것일까? 단순히 길 가에 있는 화분이라고 하기에는 낯선 느낌이다. 보통 시에서 운영하는 화분은 도로변에 인도와 도로사이에 있던가, 중앙선에 있던가 했던것 같은데, 이렇게 담벼락이 붙어 있는 화분은 본적이 없던것 같다. 그러면 시에서 설치한 화분이 아니라, 개인이 한 것일까? 묘하게 사람의 발을 붙잡는 것이 있어서, 마치 누군가가 조종하듯이 사진을 찍게 되었다. DSLR이 있었다면, 조금 더 어두워지고 가로등이 켜진다면 셔터스피드를 늘리고, 조리개값을 높여서 야간 촬영을 했었을것 같다. 신기하게 사람을 끌어 당기는 장소다. 그런데 이 장소가 내 발을 붙잡은 이유를 조금은 알것 같은 곳이 나타났다.


    불과 30m정도 갔을까? 같은 담벼락에 전신주와 쓰레기가 놓여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우리동네 쓰레기를 배출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잘 보면 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아니다. 근처 마트의 비닐 봉투다. 그리고 밖으로 흘러 나온 잡다한 쓰레기들이 보인다. 아마도 흘러내렸다기 보다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쓰레기가 생겼는데 버릴곳을 찾다가 던진 것으로 보인다. 조금 전에 깨끗했던 화분이 있던 곳이 생각이 난다. 유난히 내 발길을 붙잡았던 것은 화분에 있던 꽃이었나보다. 마치 사람이 지나가면 예쁜 꽃이 아우라를 내뿜으며 "여기는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아닙니다" 라고 하는것만 같았다. 위 사진이 쓰레기를 버리는 곳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일단 종량제 봉투가 이니니까 이 쓰레기를 버린 사람은 불법을 저지른 사람이다. 양심이 없는 사람이다. 너무나도 비교되는 두 장소는 불과 30m도 떨어지지 않는 장소이고 같은 동네 주민들이 사는 곳이고, 늘 지나던 사람들이 지나던 곳이다. 이렇게 비교되는 것은 화분이 쓰레기가 있고 없고 라기 보다는, 꽃이 있는 화분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심리가 엿보인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Broken Windows Theory)"을 아십니까? 이 법칙은 여러가지 예를 들어서 많은 사례들이 있다.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위의 사례 처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법칙은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James Q. Wilson)과 조지 켈링(George L. Kelling) 1982년에 말했다. 이 범죄학자들이 말하는 것의 중요한 포인트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라는 개념이다. 길리의 어떤 매장의 쇼윈도가 깨져 있다. 내일도 모래도 깨진 유리창은 고쳐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 깨진 유리창의 매장은 장사를 포기했다거나, 주인이 버리고 가버렸다거나 하는 상상과 함께 그 매장에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을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바로 도덕적 해이 이다. 며칠더 지나면 그 쇼윈도는 전부 다 깨져있을 것이고, 매장 내 물건은 도둑맞고, 쓰레기가 버려져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면 길가에 추차된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를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사고가 났으려니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다가, 장시간 방치되고 있다면 주인이 버렸다고 생각하게 될것이다. 어느날 자동차를 보니 바퀴를 훔쳐갔다. 또 어느날 지나보니 실내에 있던 것들을 다 빼가 버렸다. 남은 창문 마저 다 깨져버렸다. 이것이 바로 도덕적 해이가 가져오는 무서움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이 그 비교가 되는 대상이 있을 때 우리는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 바로 옆에 깨끗하게 세차된 멀쩡한 차가 한대 놓여있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깨끗한 차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 주인이 있고, 관리가 잘되어있으니 건드리면 안될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위 사진의 담벼락에 놓은 꽃화분이 같은 효과이다. 아무래도 근처에 사는 주민이 너무 더러워지는 거리를 깨끗하게 유지할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 로 정중하게 붙혀놓았을 것이다. 그래도 쓰레기는 버려진다. 사람들은 늘 그 전신주 옆이 쓰레기가 버려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도덕적 해이에 빠져있기 때문에 그렇다. 주민은 다시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CCTV 촬영중" 이라고 강하게 붙혀놓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개인이 CCTV를 운영하기란 금전적으로 쉽지 않다. 없다는걸 안 주민들은 다시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한다. 그 주민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다가 깨끗하게 꾸며보자 하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매우 효과적이었던 방법이다. It works!

     

    이러한 사람의 심리는 과거 EBS에서 방영되었던 " 3의 법칙"을 떠올리게 한다. " 3의 법칙"은 사람들의 집단적인 행동을 유발하는데에 필요한 숫자는 3명 부터라는 의미이다. 방송에서는 실험을 하나 했다. 사람이 많이 지나는 횡단보도 근처의 인도에서 어떤 한 사람이 어느 한곳을 주시하면서 계속 처다본다. 또 한사람의 실험맨을 추가해서 두명이 하늘을 쳐다본다. 두명 까지만 해도 지나가던 행인들은 상관없다는 듯이 갈길을 간다. 전혀 무관심하다. 그런데 세번째 실험맨을 추가해서 같이 하늘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뭐가 보이나?" 하고 쳐다보기 시작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하늘을 쳐다보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이 " 3의 법칙"이다. 이러한 사람의 심리는 선뜻 나서기 힘든 상황에서 많이 적용된다. 지하철이 들어올 때 밑으로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지하철을 밀어올릴 생각을 누가 했을까? 몇사람이 밀기 시작하니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기차를 밀어서 기울이고 사람을 구해냈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인정하는 것도 그 시작은 몇사람에 의해서 시작한다. 기후변화(지구온난화)가 인간 때문이란 것도 한때는 부정하려는 분위기였지만, 심각함을 계속해서 주장하던 몇사람들에 의해서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

     

    도덕적 해이가 가져오는 결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사진처럼 동네의 쓰레기 처럼 사소한 부분 부터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하면 안되는지 한번 더 생각하고 조금은 귀찮더라도 실천하게 된다면 좋은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나하나 쯤이야" 하는 생각을 고치라는 오래된 슬로건은 오래됬지만 아직도 적용되는 것을 보면 사람의 심리를 고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나 하나부터  실천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오래된 슬로건이 쓸모없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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